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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MEMO/단어vocabulary

윈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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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공


 

 

 윈저공=에드워드8세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의 퇴위 후의 호칭.


퇴위 후에 윈저공이라 불렸다.



출생, 사망 1894~1972년



윈저공 하면

사랑하는 여인과 왕위 중 사랑을 선택한 세기의 로맨스의 주인공이다. 


상대는 미국 여인으로 한 차례 이혼 경력이 있는 유부녀 심프슨 부인이었다. 보수적인 영국 사회와 영국 국교회가 이들의 결혼을 반대했으므로 에드워드는 사랑하는 여인과 왕위,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당시 권좌에서 물러나 있던 윈스턴 처칠밖에 없었다.



에드워드는 12월 11일 라디오 방송에서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 의무를 다할 수 없고 그 무거운 책임을 짊어질 수도 없음을 알았다."라며 퇴위를 공식 선언했다. 


미국의 신문이 《요트 나알린호 The Nahlin》상에서의 로맨스를 선전했기 때문에 전세계에 전파되어 내각이 총 사퇴하고, 의회에서도 헌법을 둘러싸고 대 논전이 전개되었으나, 결국 1936년 12월 국왕의 퇴위 선언서가 의회에서 수리되어, 자주적 선언에 의해서 이미 이혼한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이 실현


한 일

제1차 대전에는 프랑스 파견군 총사령관ㆍ지중해 파견군 사령군 등으로 활약



1936년 12월 퇴위한 에드워드 8세는 오스트레일리아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그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된 남동생 조지 6세로부터 윈저공작의 작위를 받았다.


1972년 에드워드 8세가 프랑스에서 먼저 숨을 거두자 심프슨 부인은 검은색 상복 위에 심프슨 블루의 숄을 걸치고 장례식장에 나와 다시 한번 그들의 로맨스를 상기시켰다. 영국왕실은 에드워드 8세가윈저성내 프로그모어에 묻힐 것을 허락하였다. 왕실 밖으로 내쫓았던 에드워드 8세를 다시 끌어안은 영국왕실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었다. 14년 후 1986년 숨을 거둔 심프슨 부인도 남편 에드워드 8세의 곁에 나란히 묻힐 수 있었다. 마침내 영국 왕실과 심프슨 부인의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심프슨 부인의 마지막 유언은 심프슨 블루의 옷으로 갈아 입혀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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